Soo Yun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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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정원으로 향하는 통로이자 문으로서의 감각 또는 관계와 연결에 대하여 (이승훈 미술비평)
 
전수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꽃의 형상이 담겨있는 매우 감각적인 회화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그런데 작가의 작업이 이처럼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표현된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작업의 지지체가 되는 표면의 질감이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아사천의 거친 질감으로부터 극도로 매끄러운 표면처리에 이르기까지 시각적 영역의 작업임에도 여기에 촉각성을 극대화하여 회화를 감각이라는 컨텍스트로부터 읽어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때 이와 같은 감각적 느낌이 강력하게 전달되고 있는 회화작업과 관련된 작가의 작업노트를 살펴보면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주를, 그리고 자아를 이야기하고자 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는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이와 관련하여 감각이라는 매개적 영역으로부터 전달되는 의미에 대해 주목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꽃의 이미지 역시 그러한 감각적 영역을 상징하는 지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작가는 이처럼 감각적 영역으로부터의 교감이 “타자와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자아를 은유한다”라고 말하면서 감각의 영역, 또는 이와 관련된 상징 체계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감각으로부터 시작하는 조형 언어 방식이 구축해 내는 것을 단지 대상으로부터 전달되는 감각 정보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을 한다는 의미에 한정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자 했던 것이고 오히려 시선을 돌려 타자 혹은 대상과 교감하게 될 때 파생되는 효과 혹은 그 세계 자체에 주목하고자 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감각이라는 지점으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였던 것이고 그것은 꽃이라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정점의 토대이자 밑받침이 되는 지지체의 질감까지도 작업의 중요한 층위가 되고 있었던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Floating Flowers>에 대해 “부유하는 수많은 꽃들은 우주 공간 속을 유영하듯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화하는 자아의 움직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과 꽃이라는 대상 사이에서 일어났던 교감, 다시 말해 타자로 인식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특정한 느낌과 신호를 전달받고 전달하는 통로로서 감각의 매개적 전환점이 되었던 꽃과의 교감에 대해 시선을 가져가도록 만들고 이때의 상호작용이 자아의 우주적 확장에 비유될 정도로 깊은 공명의 경험이 되었던 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그 교감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자아에 대한 사유와 그 과정을 작업에 그대로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경험처럼 생명이 태어나는 지점이자 존재로서 우주가 탄생하는 지점에 대해 꽃이라는 상징 이미지로 대리하여 작업 안에 가져오는 작업을 제시하고, 이로부터 감각적 현상이 어떻게 우주적 근원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일상적 말이 아니라 감각의 언어를 통해 전해주고자 하였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인간이 타인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하였고 “나와 직면하는 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라고도 하였다. 타자와의 관계가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고 정의하도록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연기(緣起)는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여 성립됨에 대해 말하였고,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역시 인간 존재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며 존재는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세계 내 존재로서 타자와 사물과의 얽힘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존재가 우주적 질서 속에서 타자로 인식되는 것들과 어떠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주목하는 가운데 작업해왔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작업 가운데 특별히 다양한 감각의 형식 속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들, 즉 가장 원천적이고 본질적인 감각들로부터 우리 스스로 느껴볼 수 있도록 그 감각적 상호작용의 장을 회화 공간 안에 구축해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우주처럼 연결된 하나의 정원 속에서 공존하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말하였다. 작가는 관계라는 것으로부터 연결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존재가 타자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배타적인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관계란 존재를 정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연결된 총체로서, 그리고 그 총체에서 분화한 개체적 존재로서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를 정원에 비유하면서 공존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신의 작업에서 풀어내 보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작가가 선택한 ‘Cosmic garden’이라는 것은 꽃, 특별히 연꽃이 상징하는 바처럼 생명 혹은 존재가 생멸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순환의 장으로서 유한한 존재, 개체적인 존재가 어떻게 거시적이며 무한한 우주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며, 동일한 체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 사유를 시작해 보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이자 상상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작가가 제안하는 관계와 연결이 의미하는 것들에 대한 메타포이자 사유적 상징 체계로 이해될 수 있게 된다. 결국 작가는 그 상상 공간의 흐름 가운데 자신의 감각적 조형 언어가 해석될 수 있는 맥락을 구축해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고립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을 대상화하고 관계 속에서 반성적 사유와 함께 메타적 차원에서 자기 인식을 해내기도 한다. 작가는 ‘Cosmic garden’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관계의 구조를 제안하는 것과 동시에 여기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감각 통로에 대해서도 안내해 주고 있다. 그렇기에 촉각적 재질감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전수연 작가의 작업은 꽃, 그리고 우주로 연결되는 메타포를 머리로 상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사유하게 만들고 있다. 감각의 방식으로 문을 열어 공명의 파동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우주적 관계에 대해, 그 연결에 대해 알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작가의 이번 전시는 이 감각의 문을 열고 다가설 수만 있다면 감각이라는 통로가 갖고 있는 가능성, 바로 그 신비로운 장치로 인해 굳이 깊이 사유하려 하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치 깊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자아에 대해서나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미지의 우주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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